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1세 (문단 편집) === 안티오키아 폭동(387년) === 영문으론 Riot of the Statues. 안티오키아의 대주교가 세 사람이나 나와 치열하게 대립하자 테오도시우스가 결론을 내려 판결을 내렸는데, 셋을 따르는 신자들 중 3분의 2는 당연히 테오도시우스의 판단에 불만을 품었다. 그런 와중에 고트족과의 전쟁 및 평화비용으로 세금까지 늘어나자 불만이 더욱 거세져버렸다. 따지고 보자면 고트족이 벌이는 유럽전쟁의 비용을 안티오크 및 아시아 지역이 물었으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. 이렇게 터지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즉위 10주년 기념 축제에 자발적인 헌금을 빙자한 특별세금이 한 차례 더 부과되자 백성들이 해당 관아로 찾아가 탄원했다. 이들의 행동을 범죄적인 문제로 일관하는 관리들의 태도에 불만이 분노가 된 안티오키아 백성들은 황제의 동상을 산산조각내고 온 거리를 끌고 다녔다. 폭동은 순식간에 진압되었으나 사건의 보고서가 황제에게 발송되자 백성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. 테오도시우스는 [[반역향|안티오키아의 지위를 격하시키고]] 따라서 토지, 특권, 세입에 대한 권리를 모두 박탈하고, 목욕탕과 원형경기장, 극장을 폐쇄 관련자들을 잡아들여 고문과 함께 심문했으며 죄인의 재산을 모두 경매에 붙였다. 또한 주교 [[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]]를 처형할 예정이었으나 진행 도중에 테오도시우스가 사면령을 내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